데스크탑의 컴퓨팅파워는 항상 밑빠진 독처럼 부족했다. 향상되는가하면 그것을 풀 이상으로 사용하여 아무리 편리해져도 뭔가가 모자른 상태의 미완성이었다. 이런 미완성은 단지 소프트웨어가 파워를 잡아먹는데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설계가 유지되는데에도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한다. 아무튼 빨라진다는데 정작 내가 하고자하는데 있어서는 얼마나 빨라졌는지 체감하는 정도가 광고하는 만큼이 아닌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결과적으로 항상 만족할만하다는 말은 그것을 계속 겪어 습관적으로 익숙해진 예상치에 비해 얼마나 조금 더 나은가에 평가되곤 한다.
이에 대한 불만의 해소조로 일반 사용자들은 내가 필요한 기능만 있으면 되는데...라는 상상을 하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기능(functionallity, not feature)이 사실은 다른 기능(feature, not functionallity)를 만드는 그런 형태의 유기적인 모습으로 인해서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알고보면 내가 필요한 기능은 이 모든 것이 된 것이다. 그런 생각에 OS가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모듈화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원점이다. 데스크탑의 파워는 결국 모자른 것이다. 새로운 기능 없이 기존 기능만 계속해서 체감속도를 빠르게 하는 OS가 나올리 만무하지 않은가. 파워에 불만이 있더라도, 그러게 만들면 그것을 사겠는가?
컴퓨터가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는 그 편함을 누리기 위해서 컴퓨터에 맞춰야하는 반대급부가 항상 존재하고 있고, 문제는 그것이 큰 숙제라는 것이다. 아직도 컴퓨터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우주의 크기만큼 남았다. 생각만 하면 이뤄졌으면 좋겠지만, 그 생각이 표현되고 디지털화되기 위해서는 거쳐야하는 여과과정이 있다.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생각이 변형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 변형의 과정은 컴퓨팅 파워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도 한참 모자르기 때문에 뱃속에 거지가 든 마냥 파워를 먹어댄다.
그것이 "데스크탑=나"의 또다른 이야기다. 파워가 모자른 것이 당연한 자연스러운 것인 이유가, 나라는 개체가 하는 것들에 가까워져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 내 머릿속의 8차원 공간이 - 원하는 것의 복잡성은 컴퓨터가 하는 것에 비할바가 아니다. 내 머릿속의 파워와 맞먹기 위해서는 수십년이 필요하다고 쳐도 파워와 함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비슷해지기 위해서는 수십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의 "Ghost in the Shell에서처럼 뇌를 전뇌화해서 직접 통신하거나 케빈 워윅처럼 신경을 직접 연결해서 인터페이스하는 등의 기술들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저 디지털로 된 세상과 아날로그인 내가 인터페이스하는 그것, 바로 데스크탑이라는 갭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이 갭을 데스크탑이라는 쉬운 말로 표현했다.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갭.
이 갭은 컴퓨팅이 보편적으로는 눈을 통해서 입력되고 손을 통해서 출력될 수 밖에 없는 현재 기술의 한계에 기인한다. 따라서 저기 저 디지털의 세계 속에서의 관점으로는 - 물론 디지털 세계가 생명이 있다는 말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기에 의인화한다면 - 나는 내 데스크탑인 것이다.
- 철수(charlz) 20070715
이에 대한 불만의 해소조로 일반 사용자들은 내가 필요한 기능만 있으면 되는데...라는 상상을 하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기능(functionallity, not feature)이 사실은 다른 기능(feature, not functionallity)를 만드는 그런 형태의 유기적인 모습으로 인해서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알고보면 내가 필요한 기능은 이 모든 것이 된 것이다. 그런 생각에 OS가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모듈화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원점이다. 데스크탑의 파워는 결국 모자른 것이다. 새로운 기능 없이 기존 기능만 계속해서 체감속도를 빠르게 하는 OS가 나올리 만무하지 않은가. 파워에 불만이 있더라도, 그러게 만들면 그것을 사겠는가?
컴퓨터가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는 그 편함을 누리기 위해서 컴퓨터에 맞춰야하는 반대급부가 항상 존재하고 있고, 문제는 그것이 큰 숙제라는 것이다. 아직도 컴퓨터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우주의 크기만큼 남았다. 생각만 하면 이뤄졌으면 좋겠지만, 그 생각이 표현되고 디지털화되기 위해서는 거쳐야하는 여과과정이 있다.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생각이 변형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 변형의 과정은 컴퓨팅 파워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도 한참 모자르기 때문에 뱃속에 거지가 든 마냥 파워를 먹어댄다.
그것이 "데스크탑=나"의 또다른 이야기다. 파워가 모자른 것이 당연한 자연스러운 것인 이유가, 나라는 개체가 하는 것들에 가까워져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 내 머릿속의 8차원 공간이 - 원하는 것의 복잡성은 컴퓨터가 하는 것에 비할바가 아니다. 내 머릿속의 파워와 맞먹기 위해서는 수십년이 필요하다고 쳐도 파워와 함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비슷해지기 위해서는 수십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의 "Ghost in the Shell에서처럼 뇌를 전뇌화해서 직접 통신하거나 케빈 워윅처럼 신경을 직접 연결해서 인터페이스하는 등의 기술들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저 디지털로 된 세상과 아날로그인 내가 인터페이스하는 그것, 바로 데스크탑이라는 갭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이 갭을 데스크탑이라는 쉬운 말로 표현했다.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갭.
이 갭은 컴퓨팅이 보편적으로는 눈을 통해서 입력되고 손을 통해서 출력될 수 밖에 없는 현재 기술의 한계에 기인한다. 따라서 저기 저 디지털의 세계 속에서의 관점으로는 - 물론 디지털 세계가 생명이 있다는 말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기에 의인화한다면 - 나는 내 데스크탑인 것이다.
- 철수(charlz) 200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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